튼튼한 노자와 아이러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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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1.02.22 02:2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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본문
음... 일전에 급한 용무로 전철을 타고 목적지로 가든 중
에 목격한 일입니다. 일요일.
비교적 서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거의 딱 맞게 앉아서
평화롭게 다들 여행하고 전 신문 읽느라 정신이 팔려 있
었죠.
어느 역이든가.. 갑자기 노자들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다들
웅성웅성하길래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...
참.. 착하게 생긴 학생(아마 중학생?)들이 노자들의 집중
공격을 당하고 있더군요.
피해자와 가해자의 그 때 상황입니다.
피해자는 용산에서 컴 부품을 사고 자기들끼리 (3명) 이것
저것 떠들면서 제품 꺼내 구경하느라 고개를 숙여서 전방
을 주시하지 못 했고 (걔들은 그 때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
음) 그 역에서 승차한 노자들은 깔끔한 등산복과 배낭 등
마치 에베레스트 산 정복하러 가는 사람처럼 겁나게 챙겨
입고선 - 마치 클리프 행어에 나오는 실베스터 같더군요-
주위 상황을 둘러 보고서 불쌍한 참새 몇 마리가 가장 만만
해 보였나 봅니다.
"요즘 학교에서는 노약자들한테 자리 양보하라고 안 가르
치냐!!!"
"어서 일어나!!!"
"요즘 젊은 애들은 교육을 잘 못 받았어.."
라며 성대를 맘껏 트레이닝시켰고(마치 산에서 '야~~호~~'
하듯이 미리 연습하나 봅니다) 옆에 다른 노자 한 분은
친구 노자들의 행패에 부끄러운 듯 고개 돌리고선 멀찌
감치 떨어져 문 옆에 서시더군요.
가엾은 참새들... 한참 재밌게 놀다가 갑자기 기습을
당하고선 얼굴 붏히며 어쩔 줄 모르고 일어서다가 꺼낸
컴 부품 떨어뜨리고 난리더군요.
그 얘들... 담 역에서 우루루 내리더군요. 견디기 어려
웠나 봅니다.
그 때 그 노자들 쇠로 된 등산용 지팡이를 바닥에 쿵!!
내려 찍고 푹 앉으며 하는 말...
"저번에는 자네 왜 늦게 왔어? 내가 30분 이상 기다렸
쟎아" "하하.. 어떤 아줌마를 도중에 만났는데 고향
사람이더라구.. 같이 얘기하면서 올라온다고 늦었어"
"그래도 그 날 내가 2번쨀 걸".....
그러다가 어느 역에 멈추자 후다닥 (마치 육백만불 사나
이처럼) 배낭을 한 손에 움켜쥐고선 뛰어 내리더군요.
마치 애들 지하철 문 열렸을 때 나갔다 들어오는 놀이
하는 속도로...
씁쓸하더군요... 못 볼걸 본 것 같아 찜찜한 맘으로
보던 신문 접고 멍하니 있는데 그 역에서 탄 어느 아줌
마 한 분.. 양 출구 중간에 버티고 서서 360도 전방향
으로 탐색을 하더니 종종걸음으로 제 쪽으로 오는거에요.
'어... 어...' 하는 사이 저와 제 옆자리 아저씨 간격
20Cm 정도되는 공간에 거의 너비 50~60Cm 되는 엉덩일
쑤셔 넣더군요. 그러고선 양 남자들 어깨위에 자신의
어깨를 걸쳐 몸의 무게를 지탱하고선 딱 눈을 감고 고요
한 명상의 시간으로 몰입하려고 하더군요.
역겨운 진한 화장품 냄새로 공기를 오염시키더니...
순간 용수철처럼 전 벌떡 일어나서 그 담 역에서 곧바로
내려 다음 차 타고 갔어요.
제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집니다.
아예 서바이벌 칸을 1~2량 정도 만들고, 승차장에 전경들
몇 명 풀어서 노자 또는 아줌마로 추정되는 기동타격대는
서바이벌 칸으로 전부 몰아 넣고 나머지 칸은 정말 평화
롭고 조용히 책 읽을 수 있는 여행공간이 되었으면 합니
다. 물론 옆 칸에서 들리는 아비규환의 메아리는 철저한
방음장치로 차단하고 차량간 통로에 설치된 출입문을 폐
쇄하고 유리도 빼서 좋은 명화 넣었으면 하고요.
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1~2량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CCTV
로 방영하여 그 날 기분 잡친 사람들 입가에 미소를 심어
줄 수 있는 기분좋은 지하철이 되었으면 합니다.
(추신)
대부분 맘 좋은 할아버지/할머니들이 많습니다.
그 날 너무 기분이 안 좋아 그 분들까지 매도하는 것처럼
적은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.
제 딸아이 안고 전철탈 때 그 분들은 힘들어 보이는 몸을
일으켜 제게 양보하려고 하시는 분들입니다.
물론 걔중에는 저와 애기 보자마자 눈 감는 (부녀간 다정
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을까요?) 노자들도 있었지만...
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글이었길 바랍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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